칠흑빛의 긴 머리카락이 차가운 레네스 해풍을 흠뻑 맞아 위태롭게 휘날린다.
깊고 어두운 바다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은 섬뜩하게 반짝이고,
송장처럼 창백한 그의 낯은 세상의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듯
무관심하게 수평선 저 너머를 바라본다.…….(베르나데트는 불청객을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베르나데트.이 외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다른 것은 네가 더 잘 알텐데.나를 담는 수식어는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건 역시…'와인 애호가'일까.술을 좋아하냐고? 싫어하는 이가 드물지않나.너도 한잔 하고 싶다면…이 근방에서는 반스트의 제바르쉬 주점이 제일 싸고 맛있어.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네 이야기를 먼저 하는 건 어떨까.
……이곳은 평화로워. 불청객도 없고.가끔 물물교환을 하는 이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내 알 바는 아니지.그거 아나?저기 동굴에는 옛날에 용이 살았어.왜 그렇게 놀라? 용은 실존해. 가이레흐 언덕의 유적따위가 아니라 정말로.지금은…없어. 내가 쓰러트렸으니까.우린 희망을 입에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었나.아니, 틀렸어.선택된 감응자인 내가 선택한다면 너 또한 에린과 운명을 함께 할 수 있었어.네가 바랐다면.네가 나를 바랐다면 기꺼이 그러했을텐데.
(베르나데트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아…….(베르나데트는 몸을 크게 움직였다가 이내 다시 차갑게 얼굴을 굳혔다.)못 볼 꼴을 보였어. 잊어주면 좋겠는데.…….(베르나데트는 여전히 '루에리' 라는 이름을 중얼대다가 다시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로 사용하는 스킬?…….
매그넘 샷.힘을 줘 활시위를 당기는 것에 소질이 있거든.너도 관심이 있나?아르카나 협회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오고 있지만….썩 내키지는 않아.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니까.주로 나는 활을 사용하기 때문에 '알케믹 스팅어'라는 아르카나를 사용하는데.그 중에선 하이드로 피어스라는 스킬을 좋아해.사용할 때마다 연금결정이 필요한 건 달갑지 않지만.
일을 찾는거라면 저기, 교역상단으로 가보는 건 어때.일을 시켜달라고?내가?너에게?왜?
(베르나데트는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표정이다.)에린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었지. 포션을 살 돈이 없었거든.일을 잘했냐고?글쎄…….
딱히 배워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낚시하는 걸 좋아해.한번 배를 타면 한참을 같은 자리에 있지. 그리고 잡은 것들은 모두 풀어줘.……? 그럼 왜 잡냐고?그냥, 옛날엔 그런걸 좋아했었거든.최근에는 밤에 별을 낚기도 하는데.하다르 결정은 모아두고 있어. 다른 결정들에 비해 값이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글쎄, 예쁘잖아. 초록은.
왜 활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다고…원래 있던 곳에서는 총을 썼었어. 살라키아의 막내딸이라는 이름의.살라키아가 누구냐고?살라키아시여, 나의 배를 풍랑 위에 띄우시고…
이상향으로 이끄소서….
(베르나데트는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내가 사용하는 활?크롬 바스 글라스 기브넨의 시체에서 나오는 부속물로 만든 활이야.나이트브링어 프레데터.직접 만들었냐고 묻는다.
활 중앙에 보석이 반짝이는 것 같다.
……?내가 왜?경매장에 인챈트와 세공이 잘 발린 무기가 널렸는데.구태여 힘든 일은 하지 않는 주의라.무기를 잘 만드는 밀레시안들이 있던데 부럽긴 하더군. 하지만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라.(베르나데트는 대화를 그만했으면 하는 눈치다.)내겐 꽤나 어렵더라고.…….
(베르나데트는 순간 제법 온화한 얼굴을 하고 활에 일정한 속도로 점멸하는 보석을 손으로 쓸어보았다.)녹음과 군청……꽤 잘 어울리지 않나?
이 근처에 묘지는 없어.추상적인 의미의 묘지라면 여기겠지.
(베르나데트는 자신의 심장을 쿡 누르며 가리켰다.)죽은 것들, 그리고 죽어가는 것들이 내게 살아 숨쉬어.
그래서 나는 편히 잠들 수 없지.
완벽한 낙원은 존재할까.글쎄, 내가 살았던 곳에도 '티르 나 노이'라는 게 있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쉬이 죽어가진 않았겠지.그런 걸 믿나?너도 순진한 구석이 있군 그래.
자이언트의 도시, 발레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지.지금은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글쎄, 난 내 모습은 엘프이지만, 한번도 필리아의 엘프와 동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그야 난 검은 머리 엘프니까. 칠흑빛의 머리카락이 제법 불길하지않나?
(베르나데트는 드물게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다.)필리아의 아트라타를 알고있나?그렇다면 검은 머리 엘프에 대해서도 알고있겠지.뭐, 아트라타는 온순한 성정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서.필리아의 엘프들은 저들과 똑같은 얼굴의 나 또한 두려워하였지.고작.고작, 머리카락의 색만으로 동족을 재앙 취급하는 꼴이란!(베르나데트는 입꼬리를 비틀며 하하 웃었다.)
최근에 에메랄드 빛의 반지를 선물받았는데…잃어버렸어.아마 글렌 베르나에 들렸을 때부터 손에 없었으니까……눈발에 잃어버린거겠지.슬퍼할텐데.내가 있던 곳에서는 사파이어를 가공해 목걸이를 만들어 항해하는 이들에게 건네주곤 했어.항해가 아니더라도,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도 무운을 빌며 주곤 했었는데…….만들어 달라고 한다.
너는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맨 입으로?내가 가진 것은 선물했어. 이제 나한테는 의미 없을테니까.…….말했잖아. 무운을 빌면서 주는 거라고.
까맣고 무겁고 딱딱해보이지.그렇게 보이라고 입은거야.(베르나데트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팔에 걸쳤다. )엘프의 몸은 뼈 마디가 얇은데, 작아보이고 싶진 않아서.그래서.내가 이 옷을 입는걸 좋아하는 이가 있어.나 또한 그가 격식을 갖춘 모습을 아주 좋아하고.아, 아닌가. 그 아인 내가 어떤 옷을 입고있어도 좋아하던 눈치였던가…….이런 류의 옷들을 얼마나 자주 입냐고?…….매일?살갗이 많이 드러나는 옷은 싫어서. 뭘 믿고 다른 이에게 맨살을 보이지?내가 예민하다고?하아…….
(베르나데트는 피곤하다는 듯 손을 휘휘 젓더니 고개를 돌렸다.)
(베르나데트는 일순간 얼굴을 굳혔다.)흐음,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대답해 줄 수 없겠는걸…….(베르나데트는 묘하게 장난스러운 낯이다.)알반기사단의… 아르후안 조의 조원급 기사였지, 지금은….
(베르나데트는 말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그때는 참 귀여웠는데, 뭐랬더라….
(베르나데트는 흠흠, 하고 목을 다듬었다.)예전부터 쭈욱 존경해왔습니다! 악수 한번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베르나데트는 벅찬 어리숙한 소년의 모습을 놀라울정도로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리고 다시금 얼굴을 차게 굳혔다.)그 말은 내게 구원이 되었어.죽어가던 나를 일깨워준거야. 무력함보다 더 고결한 동경이라는 신호로.
BGM: Kreisler: Praeludium and Allegro (Vn. 정경화 ver.)
(이 주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